명현록
유학자 강해(江海) 최두찬(崔斗燦)
기본 정보
本貫 世系 : 영천최씨 21세. 군수공파
출생 : 1779년(정조 3) 사망 : 1821년(순조 21)
출생지 : 경산시 자인현 상대리
정의
조선후기 표류견문록 승사록(乘槎錄)을 저술한 유학자
개설
본관은 영천(永川). 자는 응칠(應七), 호는 강해(江海). 부친은 휘(彙), 조부는 여각
(汝慤), 증조부는 옥(鈺), 고조부는 영기(永基)이다. 김해김씨와 혼인하여 2남 1녀를 두
었다.
1817년 제주도를 방문하고 돌아오다 풍랑을 만나 표류하다 중국 영파부 정해현에
표착(漂着)하여 체류하였다 1818년 10월 고향으로 돌아와 표류기 「승사록(乘槎錄)」
을 저술하였다.
생애 및 활동사항
최두찬은 임진왜란 의병장 최문병의 7대손으로 1779년 6월 23일 경산시 자인현 상
대리에서 출생했다. 1817년 5월 제주 대정현감(大靜縣監)으로 부임한 장인을 방문하
고 1년 뒤 육지로 나오던 중에 풍랑을 만났다. 이후 50인과 함께 16일 동안 바다에
표류하다가 다행히 어선을 만나 중국 영파부 정해현에 표착(漂着)하였다. 그는 정해
현에서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표해일기를 기록했고, 이를 접한 중국인들은 강렬한
인상을 받게 된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최두찬은 강남 땅 여러 선비와 교유하기에 이른다. 이는 최두
찬이 한시와 필담 등에 두루 능하며 문학·역사·지리에 관한 풍부한 인문학적 지식
을 갖춘 인물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당시 조선의 시골 선비들의 학문적 수준이
어느 정도였는지 충분히 가늠할 수 있다.
최두찬은 중국에 체류하는 동안 특히 강남지역 물산의 풍부함과 건물 및 성지의
웅대함, 그리고 활력이 넘치는 도시 모습에 경탄을 아끼지 않았다. 중국의 다른 곳에
체류한 기간에 비해 강남에 체류한 기간은 길지 않았음에도 이 책에는 강남에 대한
기록이 3분의 2를 차지한다. '필담창화'(筆談唱和)를 나눈 중국 문사 대다수도 이 지
역 인사들이다. 이외에도 최두찬은 중국 강남의 풍속과 산천명승, 중국 선비와의 수
창, 필담 문답, 가옥·의복·농사·무덤·배와 선박 등에 대한 다양한 기록을 남겼
다.
또한 하북(河北) 지방은 땅이 매우 척박하고 백성들은 곤궁하다고 기록하고 있으
며, 산둥(山東)에서 고려지(高麗紙)를 접한 일도 기록하였다. 최두찬은 고려지가 자신
이 강남에서 썼던 종이보다 훨씬 재질이 우수하고, 중국과 일본에서는 천금보다 비
싸다는 사실을 자랑스럽게 시로 표현하였다.
영파부 정해현 관음사에서 시작한 중국 체류는 총 116곳을 경유하고, 마침내 1818
년 3월 압록강을 건너 10월 그믐에 집으로 돌아오면서 마무리되었다. 고향에 돌아와
서도 강남을 잊지 못하고 그리워한다는 뜻에서 '강남정'(江南亭)이라는 정자를 지어
여생을 보내다가 1821년 9월 생애를 마감했다. 그가 남긴 '승사록'은 다른 표해록에
비해 낯설고 신비로운 정경을 인상적으로 그려내었을 뿐 아니라, 국적을 초월한 지
식인들의 교류 양상을 보여주는 소중한 자료로서 가치가 크다.
그의 표류일기 '승사록'은 1917년 최두찬의 증손 최지영(崔址永)이 목판본 3권 1책
으로 간행하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영남대 중앙도서관 소장본을 비롯해 5종이 현재
까지 전해온다. 시문(詩文)과 표류일기가 주요 내용이며, 출범→표류→귀환 구조를 띠
고 있다.
저서
「승사록(乘槎錄)」
참고자료
- 「승사록(乘槎錄)」
- 군수판서공파 종중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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