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현록



유학자 죽헌(竹軒) 최항경(崔恒慶)
 기본 정보
   本貫 世系 : 영천최씨 17세.  사정공파 법산종중 입향조
   출생 : 1560년(명종 15) 3월 24일          사망 : 1638년(인조 16) 5월 19일
   출생지 : 경기도 고양시 원당리
 정의 
   조선중기 유학자. 한강(寒岡) 정구(鄭逑)의 문인(門人)
 개설
  본관은 영천(永川), 자는 덕구(德久), 호는 죽헌(竹軒). 부친은 성균진사 정(淨), 조부
는 장령(掌令) 사철(師哲), 증조부는 참봉 유(裕), 고조부는 고령현감 희호(希浩)이다. 
풍산유씨 귀암(龜巖) 경준(景濬)의 따님과 혼인하여 2남 관봉(鸛峰) 은(𨏈) 매와(梅窩) 
린(轔)을 두었다.
  1605년 중광시(增廣試)에 3등 4위로 입격하였으나 벼슬에 뜻이 없어 오암정사(鰲巖
精舍)를 짓고 후학을 양성하면서 스스로를 경계하는「자경잠(自警箴)」을 지어 위기
지학(爲己之學)과 궁행실천(躬行實踐)에 힘썼다. 사후 학덕을 추모하여 통훈대부제용
감정(通訓大夫濟用監正)에 추증(追贈)되었다.
 생애 및 활동사항
  최항경은 1560년 3월 24일 경기도 고양시 원당리에서 출생하였다. 16세 되던 해 
부친이 선대의 전장(田莊)이 있는 성주에 성묘를 왔다가 갑자기 돌아가시게 되어 현
지에서 삼년상을 치른 후 母夫人과 선친의 친구인 한강(寒岡 鄭逑)선생의 권유로 선
산 인근 법산마을에 눌러앉게 된 것이 오늘날 법산 죽헌종중을 연 시초이다.
  20세에 한강 문하에 입문 수학하였으나 일찍이 현실 참여보다는 성리학적 가치의 
실천에 뜻을 두어 관계에 진출하지 않고 평생을 성리학자로서 위기지학(爲己之學) 일
념으로 후진 양성에 전념하였다. 그의 두 아들 관봉 은(鸛峯 𨏈. 1583∼1656)과 매와 
린(梅窩 轔. 1597∼1644) 역시 동문수학 성취하여 後에 水下三賢(죽헌의 거처 오암정
사가 한강선생의 百梅園 보다 대가천 하류에 있다)으로 널리 알려졌다. 백매원의 여
러 제자 가운데 최항경의 학행을 높이 평가하고 연치를 존중하여 한강과 동문들은 
일찍부터 그를 ‘水下丈’으로 불렀다.
  한강선생이 예서(禮書)를 저술할 때 특별히 죽헌과 그 자제를 청하여 책을 교감(矯
監)하게 하였고, 한강이 창건을 주도한 川谷書院(성주 벽진. 程子와 朱子, 김굉필 이
언적 등을 배향한 사액서원. 고종 5년 훼철) 洞主(원장)를 여러 해 맡은 뒤 사퇴코자 
하였으나 한강이 적극 만류하였던 사실로 미루어 죽헌의 학덕과 인품을 짐작할 수 
있다. 한강선생이 작고하자 죽헌 삼부자는 몸소 염빈(斂殯)을 보살펴 친상(親喪)처럼 
하였고, 회연서원에 향사하는데 초대 원장으로 천거되었다. 6년 만에 사당을 짓고 묘
비를 세우며 문집을 간행하였으니 한강학단 300여 門人 가운데서 죽헌의 위치가 어
떠했는지 알만하다.
  임진왜란 때 비록 늙은 어머니를 모시느라 직접 싸움터엔 나가진 못하였으나 학봉
(鶴峰) 김성일(金誠一)의 초유격문(招諭檄文)에 감읍하여 지은 시가 있다. 병자호란 때
는 두 아들을 고령(高靈) 창의진(倡義陣)에 내보냈으나, 왕이 이미 항복하였다는 소식
에 분격하는 원한시를 지었다. 
  최항경의 위패를 봉향한 오암서원(鰲巖書院)은 33호선 국도변 법산마을로 들어가는 
오암산 자락에 위치한다. 그가 죽은 후 사림의 공의로 선생이 후진을 양성하던 오암
정사 자리에 영조 6년, 정조 5년 두 번에 걸쳐 서원을 세우고 위패를 봉안했지만 나
라의 서원철폐령으로 훼철(毁撤)되었다. 현재의 서원은 서원철폐령 이후 서당으로 존
속돼 오다 1985년도에 중수하고 2007년도에 지역 유림과 宗人들에 의해 서원으로 복
원되어 매년 3월 初丁日에 향사한다. 등암 배상룡(藤庵 裵尙龍)은 죽헌을 제사하는 
제문에서 죽헌의 풍모에 대하여 “長子의 風度를 지니고 군자의 意味를 가졌도다. 
한번 의용(儀容)을 접하면 누가 마음으로 취하지 않으리오”라고 그렸으며, 한강학단
에서의 위치에 대하여 “회연서원을 창건할 때 많은 선비들의 촉망으로 公이 원장이 
되어 그 의론을 주장하였네. 마침내 위판을 봉안할 수 있게 되었으니 정성과 힘을 
다하여서 갖추어 짐이로다”라 회상했다. 
  최항경의 유고(遺稿) 죽헌문집은 전란과 화재로 많이 없어지고 겨우 4권 2책으로 
간행되었는데 목판본은 현재 안동 국학진흥원에 보존되어 있다. 국역본은 2016년 성
주문화원에서 「법산유고(法山遺稿)」 3권으로 발간하고 사계(斯界) 학자들을 초빙하
여 학술대회를 개최한 바 있다. 묘갈명은 성호 이익(星湖 李瀷), 묘도비명은 대산 이상
정(大山 李象靖)이 지었으며 문집 서문은 후대 응와 이원조(凝窩 李源祚)가 썻다. 이들 
근기(近畿)와 영남의 대표적 석학들의 서술은 죽헌의 학덕을 후세에 알리는데 결정적 
근거가 되는 것이다. 
 저서
  - 죽헌문집(2016년 성주문화원에서 국역본「법산세고」발간.
 추모
  오암서원(경북 성주군 수륜면 남은 1리) 그의 두 아들과 함께 배향되어 매년 3월 
초정일(初丁日)에 향사한다. 유림 불천위로 추대되어 매년 5월 19일 기제(忌祭)를 봉
행한다.
 참고문헌 
  - 「죽헌 최항경 삼부자의 인간자세와 한강학단에서의 위치」(성균관대 명예교수 
김시업. 2016)
  - 묘갈명(성호 이익 撰). 묘도비명(대산 이상정 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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