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현록



여산도호부사(礪山都護府使) 최호(崔琥)
 기본 정보
   本貫 世系 : 영천최씨 20세.  사정공후참판공파
   출생 : 1661년(현종 2)            사망 : 1721년(경종 원년) 10월 10일
   출생지 : 경북 성주군 수륜면 법산
 정의 
   조선중기 부산포절제사 여산도호부사 등을 역임한 무신(武臣)
 개설
  본관은 영천(永川), 자는 서경(瑞卿). 부친은 증(贈)호조참판 진중(鎭中), 조부는 증
(贈)통정대부 장예원판결사(掌隷院判決事) 은(𨏈), 증조부는 증(贈)통훈대부 제용감정
(濟用監正) 항경(恒慶), 고조부는 진사 정(淨)이다. 동래정씨와 혼인하여 슬하에 2남 4
녀를 두었다. 장남 후태(後泰)는 하동도호부사겸진주병마절제사, 차남 후식(後寔)은 
통덕랑(通德郞)이다.
  1693년 무과 급제하여 부산포절제사 통정대부 여산도호부사 등을 역임하였다.
 생애 및 활동사항
  최호는 1661년 성주 법산에서 出生하였다. 어려서는 기상이 침착하고 무겁고 마음
가짐이 대범하고 민첩하였으며 글재주가 뛰어났었다. 10세 위의 백씨(伯氏) 위(瑋)와 
시를 지을 때  백씨가 “꽃은 삼촌(三春)의 봄에 피고”라는 운에 “잎은 만리(萬里) 
바람에 흔들린다” 라고 응대하여 사람들을 놀라게 하였다는 일화가 있다.
  최호는 1693년 무과에 급제하여 선전관위도진절제사구성도호부사부산포절제사
나주영장 등을 거쳐 통정대부 여산도호부사를 역임했다. 구성도호부사 재임시 성벽
을 완벽히 보수하고 무기를 일제 정비하였으며, 부실한 군적(軍籍)을 실병력 위주로 
정비하여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고 백성들에게 학문을 권장하였다. 부산첨사 재임시
는 문란한 군오(軍伍)의 계율을 엄한 칙령으로 다스리고, 왜인(倭人)에 대하여 허가된 
범위를 넘는 상업을 엄금하고 혼잡한 거처를 근절하여 엄히 다스리니 왜인들이 임진
왜란을 뉘우치며 크게 개탄하였다.
  최호는 백성을 사랑하여 중죄인을 제외하고는 관대히 다스렸고 특히 사궁(四窮) 중
에서 자활(自活)이 불가능한 이들에게 봉록의 여분으로 구휼하여 고을의 임기를 마치
고 돌아올 때는 수레가 텅비어 쓸쓸하였다.
  1720년 숙종 임금 승하 국장(國葬)을 수행 중 병을 얻어 그 이듬해 여산도호부사를 
사임하고 고향으로 돌아와 성주 법산 여동정사(餘洞精舍)에서 사망하였다.
 참고문헌 
  - 「法山祖範」(법산 진수재계회. 1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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