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현록



하동도호부사(河東都護府使) 최후태(崔後泰)
 기본 정보
   本貫 世系 : 영천최씨 21세.  사정공후참판공파
   출생 : 1689년(숙종 15)               사망 : 1759년(영조 35년) 7월 6일
   출생지 : 경북 성주군 수륜면 법산
 정의 
   조선중기 통정대부 하동도호부사겸진주진절제사를 지낸 무신(武臣)
 개설
  본관은 영천(永川), 자는 망숙(望淑), 초휘는 후첨(後瞻)이다. 부친은 통정대부 여산
도호부사 호(琥), 조부는 증(贈)호조참판 진중(鎭中), 증조부는 증(贈)통정대부 장예원
판결사(掌隷院判決事) 은(𨏈), 고조부는 증(贈)통훈대부 제용감정(濟用監正) 항경(恒慶)
이다. 완산이씨와 혼인하여 슬하에 2남을 두었다. 장남 시(峕)는 통덕랑(通德郞), 차남 
암(嵒)은 여산도호부사이다.
  1728년 무과 급제하여 통정대부 하동도호부사겸진주진병마절제사를 지냈다.
 생애 및 활동사항
  최후태는 1689년 성주 법산에서 出生하였다. 1728년 무과 급제하여 30여년 관직에 
있으면서 내직(內職)으로는 선전관도사주부경역부호군 등을 역임하였고, 외직(外
職)으로 삼척진라난만호낙안군수순천영장 등 거쳐 통정대부 하동도호부사겸진주진
절제사를 역임했다.
  최후태는 성품이 침착하고 굳세며 뜻이 견고하고 확실하여 시류에 휩쓸리지 않았
다. 일찍이 한 권세있는 사람이 그의 중대(重大)한 명망을 알고 인도하여 자기 집에 
두고자 하였으나 끝까지 응하지 아니하니 그의 어른다운 풍모가 세인의 모범이 될만
하다고 일컬었다. 고을 수령 재직시는 가는 곳마다 효제(孝悌)와 농잠(農蠶)을 권장하
고 민폐를 덜게하였으며 선정을 베풀었으니 이로써 백성들이 송덕비를 세워 덕을 칭
송하였다. 
  성품이 완고하여 풍속에 따라 쳐다보고 굽어보기를 즐겨하지 않았으니 이런 연고로 
만년 하위 관료에 머물고 역경에 빠져 포부를 다 펴지 못하고 만년에 관직을 박차고 
고향 집에 돌아와 만오(晩悟)라 현판을 걸고 송국(松菊)을 벗하며 노후를 보냈다.
 참고문헌 
  - 「法山祖範」(법산 진수재계회. 1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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