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현록
순절(殉節) 충신 최자섭(崔自涉)
기본 정보
本貫 世系 : 영천최씨 12세. 부사공파
출생 : 불상 사망 : 1457년 이후
정의
조선 초기 단종복위운동에 가담하여 순절한 문신
개설
본관은 영천(永川) 초명은 자척(自滌) 호는 의재(義齋). 부친은 부사 계성(繼性), 조
부는 예문관 직제학 흥효(興孝), 증조부는 전서판군기시사(典書判軍器寺事) 일(壹) 고
조부는 좌윤(左尹) 흡(洽)이다. 영천이씨와 혼인하여 아들 환(漶)을 두었다.
1448년 문과 급제후 집현전 박사가 되었으나 1453년 계유정난으로 물러나 있다가
1457년 정선현감으로 제수(除授)되었으며, 당시 장인이었던 순흥부사 이보흠(李甫欽)
의 단종복위운동에 가담하였다가 처형되었다.
생애 및 활동사항
최자섭의 생몰 년도에 대한 기록은 상세하지 않다. 영천최씨 부사공파 후손들이
보존하고 있는 종중 기록「정선현감순절록」에 아래와 같은 내용이 전해지고 있다.
위 기록에 의하면 최자섭은 1448년 문과 급제 후 집현전 박사가 되었으나 1453년 계
유정난으로 물러났고 1457년 정선현감 재직 당시 장인이었던 순흥부사 대전(大田) 이
보흠(李甫欽)이 주도한 단종 복위운동에 적극 가담하였다가 거사 전날 관노의 밀고로
발각되어 처형된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실록의 기록은 약간 상이하다. 실록에는 최자섭이 초명 최자척(崔自陟)으로
기록되어 있고, 단종실록 1455년(단종 3년) 2월 27일 계묘 3번째 기사에 -의금부에
전지(傳旨)하기를, 최자척(崔自陟)강종산(姜從山)은 아울러 고신을 거두고 먼 변방에
충군(充軍)하고 ―라고 기록하고 있고, 세조실록 2권 1455년(세조 1년) 11월 9일 경진
1번째 기사에 ―최자척(崔自陟)은 교수형에 처하고 가산을 적몰(籍沒)하며―라고 기록
되어 있으며, 세조실록 3권 1456년(세조 2년) 3월 18일 정해 5번째 기사에 ―최자척
(崔自陟)의 상주(尙州) 전토를 영응대군 이염(李琰)에게 내려 주고―로 기록되어 있다.
해당 종중의 기록과 실록의 기록에 연대와 날짜는 약간의 차이가 있으나 최자섭
(초명 최자척)이 단종복위운동에 가담하여 순절한 것은 틀림없는 사실로 보인다.
정조실록 32권 1791년(정조 15년) 2월 21일 병인 2번째 기사 ―장릉 배식단에 배향
할 사람의 명단―에 의하면 숙종임금 때 노산군이 단종으로 복위되고 1795년 정조
15년 왕명으로 단종복위운동에 희생되었던 충신들의 배식단(配食壇)과 배식단사 장판
옥(配食壇舍 藏版屋)을 영월 장릉(莊陵. 단종의 능)의 홍전문 밖에 건립하여 순절 충
신을 비롯한 관계자 268위 위패를 배설하였는데 여기에 최자척의 위패를 봉안하고
있다. 이로써 단종 복위운동으로 희생된 충신 등 관계자들이 순절(殉節) 후 340년이
지나 모두 신원(伸冤) 복권되었다.
추모
영월 장릉의 배식단에 위패를 모시고 매년 단오절에 단종복위 순절충신 합동으로
추모제를 올리고 있다.
참고문헌
- 「정선현감순절록」
- 조선왕조실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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