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현록
의병장 최문병(崔文炳)
기본 정보
本貫 世系 : 영천최씨 14세. 군수공파
출생 : 1557년(명종 12) 사망 : 1999년(선조 32)
출생지 : 경산시 자인면 원당(元堂)
정의
조선시대 임진왜란 당시 의병장.
개설
본관은 영천(永川). 자는 일장(日章) 호는 성재(省齋). 부친은 식(湜), 조부는 증(贈)
절충장군 용려위부호군 공권(公權), 증조부는 생원 규(奎), 고조부는 절충장군 행(行)
내금위장 사해(四海), 본생(本生) 조부는 참봉 공형(公衡)이다. 문화유씨와 혼인하여 2
남 1녀를 두었고, 영천이씨를 후처로 맞아 1남 2녀를 두었다.
임진왜란 당시 의병을 일으켜 큰 공을 세웠다. 창의(倡義) 공훈으로 장기현감에 제
수되었으나 부임하지 않았고, 어모장군 훈련원첨정이 되었다. 사후 가선대부 한성부
우윤에 증직되고 자인 용계서원 충현사에 배향되었다.
생애 및 활동사항
최문병은 1557년 경산시 자인면 울옥리에서 출생하였다. 어려서부터 총명 영특하
여 5세에 시를 외웠고 11세에 외삼촌 계동(溪東) 전경창(全慶昌) 문하에서 학문을 닦
았다.
1589년(선조 22년) 당시 국가적인 재변(災變)이 심하여 국난이 있을 것으로 예견하
고 가산을 정리하여 활과 칼 등 병기를 미리 준비하였다.
자인에 살면서 학문에 힘쓰다가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향리에서 의
병을 모집하여 천장산(千丈山)에서 적의 침입을 격퇴하였으며, 다시 청도의 의병장
박경전(朴慶傳)과 합세하여 두곡(杜谷)·선암(仙巖)·가지현(佳旨縣) 등지에서 적을 무
찔렀다.
이어 다시 권응수(權應銖)와 합세하여 영천의 적을 물리친 공으로 1593년에는 동지
중추부사 박진(朴晋)의 상주로 인하여 감목관(監牧官)이 되었다.
저서
- 문집 「성재선생실기(誠齋先生實記)」
- 유물 96점과 서책 455권을 남겼다. 최문병 의병장이 사용하던 말안장은 보물
747호로 지정되었다.
참고문헌
- 성재선생실기(誠齋先生實記)
- 선조실록(宣祖實錄)
- 영남인물고(嶺南人物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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