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현록



화통도감제조(火㷁都監提調) 최무선(崔茂宣)
 기본 정보
   本貫 世系 : 영천최씨 7세.  영성부원군파 파조(派祖).
   출생 : 1326년(충숙왕 13) 경.            사망 : 1395년(태조 4) 4월 19일
   출생지 : 영천시 금호읍 원기리
 정의 
   고려 후기 무신으로 화통도감을 설치하여 화약과 각종 화기를 제조한 발명가.
 개설
   본관은 영천. 부친은 광흥창사(廣興倉使)를 지낸 동순(東洵), 조부는 봉익대부 종
부판사(宗簿判事) 극평(克平), 증조부는 진사 익겸(益謙), 고조부는 현감 상지(尙智)이
다. 배위(配位)에 대한 기록은 찾을 수 없고 아들 해산(海山)을 두었다. 고려 후기 화
통도감을 설치하여 각종 화기들을 제조하였고, 영성부원군파 종중(宗中)을 열었다. 
  최무선이 언제 관리가 되었는지는 기록이 없다. 무관이던 그는 왜구의 노략질을 
방어하기 위해 화약과 총이 절실함을 깨닫고 연구를 시작했다. 엄청난 공을 들여 화
약 제조법을 알아내고 화통도감을 설치하여 본격 제조에 들어가 대장군·이장군·삼
장군 등 총포, 화전·철령전 등 발사물, 질려포·철탄자와 로켓무기인 주화까지 총 
18가지 화기를 제작했다. 1380년에 쳐들어온 왜구의 500여 척의 선박을 화기로 무장
한 전함을 이끌고 나가 싸워 격파했다. 역사는 이 사실을 진포대첩으로 기록하여 기
리고 있다.
  화통도감제조 겸 군기감사를 지냈으며, 고려조에서 삼중대광 영성군 조선조에서 
대광보국숭록대부 의정부우정승 병조판서 영성부원군(永城府院君)으로 추봉되었다. 
 생애 및 활동사항
  최무선은 1326년경 경북 영천시 금호읍 원기리에서 출생한 것으로 추정하나, 이것
은 「태조실록」의 기사와 「신증동국여지승람」 등에 수록된 “태조 4년에 70세의 
나이로 죽었다”는 기록으로 유추해 본 것이다. 최무선의 성장기에 대해서는 문헌상 
알려진 것은 거의 없으나 전해오는 이야기로는, 어린 시절 재주가 뛰어나 총명하고 
사리에 밝았으며 병정놀이를 즐겨했고, 당시 전쟁놀이 무기를 만들고 고치는 일과 
병력 배치 등에 뛰어난 의견을 내어 마을 어른들을 놀라게 하였다고 한다. 「태조실
록」과「신증동국여지승람」등에는 “과학기술에 관한 책들을 많이 읽었고 중국어를 
잘하였으며 군사와 병법에 관한 이야기를 하기를 좋아했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최무선이 청소년 시절을 보낸 1330년대는 고려의 대몽 항쟁시대였었고, 왜구가 전
라도와 경상도 해안 지역에 자주 나타나 막심한 피해를 주고 있었다. 아버지가 광흥
창사로 예성강 하구로 들어오는 전국의 조운선을 관리하는 책임을 맡았기 때문에, 
왜구들의 노략질로 인한 피해를 몸소 많이 겪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최무선이 언제 어떤 경로로 관리가 되었는지는 명확한 기록이 없으나 군기감(軍器
監)에서 일하면서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화약을 발명하고 화약을 이용한 무기를 처
음 제작, 사용하였다. 무관인 그는 고려 말기에 한창 기승을 부리던 왜구의 노략질을 
막기 위해 화약과 총을 만들기로 결심하고 연구에 임하였다. 그 결과, 화약을 만드는 
세 가지 재료, 즉 초석·유황·분탄 중에서 유황과 분탄은 쉽게 구할 수 있으나 초
석을 만드는 것이 가장 어렵고 중요하다는 것을 알아냈다. 그래서 화약을 만들어 사
용하고 있는 중국에서 배우기로 하고, 중국 사람들의 왕래가 잦은 무역항 벽란도에 
가서 중국으로부터 오는 상객들 중에서 초석(염초)의 제조방법을 알고 있는 사람을 
찾았다. 그러던 중 중국의 강남지방에서 온 이원(李元)을 만나게 되었다. 그는 후하게 
대접하는 등 지극한 정성과, 화약을 만들어 국가를 살리겠다는 집념으로 이원을 감
동시켜 초석을 흙에서 추출(抽出)하는 방법을 배우고, 드디어 화약을 만드는 데 성공
하였다. 간단한 화약을 이용한 무기, 즉 화전(火箭) 등을 만들어 실험해 본 그는, 마
침내 자신을 얻어 화약과 각종 화약을 이용한 무기를 연구하고 만들 화통도감(火筒
都監)의 설치를 몇 번에 걸쳐 건의하여 끈질긴 노력 끝에 성사되어 1377년 10월부터 
화약과 화약무기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를 시작하였다. 
  화통도감에서 제조된 각종 화기들은 모두 18가지로, 이 중에서 총포의 종류는 대
장군(大將軍)·이장군(二將軍)·삼장군(三將軍)·육화석포(六火石砲)·화포(火砲)·신포
(信砲)·화통(火筒) 등이며, 화전(火箭)·철령전(鐵翎箭)·피령전(皮翎箭) 등은 발사물, 
그 밖에 질려포(疾藜砲)·철탄자(鐵彈子)·천산오룡전(穿山五龍箭)·유화(流火)·촉천
화(觸天火)와 로켓무기로 주화(走火)가 있다.
  1380년(우왕 6)에 왜구가 500여 척의 선박을 이끌고 금강 하구의 진포로 쳐들어왔
을 때 부원수로 임명되어 원수(元帥) 나세(羅世)와 함께 각종 화기로 무장한 전함을 
이끌고 나아가 싸워 격파시키는 큰 공을 세웠다. 고려에서는 지문하부사(知門下府事)
라는 벼슬까지 올랐으며, 조선 초에는 나이가 많아 등용되지 못하였으나 사후 그의 
공훈을 기리기 위해 의정부우정승(議政府右政丞) 영성부원군(永城府院君)으로 추증(追
贈)하였다. 
  아들 최해산(崔海山)과 손자 최공손(崔功孫)도 화약과 화기 연구에 참여하였다. 
 저서
  저서는 『화약수련법(火藥修鍊法)』을 남겼으나 전하지 않고 있다.
 추모
  군산시에서는 우리나라 최초로 화약을 이용한 함포로 왜구 500여척을 무찌른 최무
선장군의 진포대첩을 기리기 위해 1999년 개항 100주년을 맞아 전북 군산시 성산면 
성덕리 금강호시민공원에 진포대첩기념탑과 진포대첩사적비를 건립하였고, 2008년 
조성한 진포해양테마공원에 “최무선과 화포이야기” 등을 주제로 한 전시관 위봉관 
을 건립하여 기리고 있다. 또한 군산문화원에서는 2005년 10월부터 격년제로 “10월 
시간여행 축제” 기간 중 군산내항에서 최무선장군을 주제로 한 진포대첩 재현행사
를 거행하고 있다.
  영천시에서는 최무선장군의 애국적 과학정신을 이어받고 이를 통한 호국정신을 앙
양하기 위해 2007년 영천시 금호읍 원기리 장군의 생가터에 최무선과학관을 건립하
여 장군의 생애와 화약개발 등 관련 자료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전시관 및 체험실 등
을 운영하고 있다. 
  이밖에 해군에서 잠수함 “무선함” 명명, 국방부에서 2015년 4월“이달의 호국인
물”선정, 한국천문연구원에서 “최무선별” 명명, 대전 카이스트 “명예의 전당” 
헌정, 영천시에 최무선로 명명, 최무선체육관 건립 등으로 장군을 기리고 있다.
  대종회에서는 영천시 최무선과학관 부지에 2015년 4월“최무선선생송덕비”2020년 
12월 “최무선장군공적비”등을 건립하고 매년 4월 21일 과학의 날에 영천시민과 영
천최씨 종인들이 함께하는 “최무선장군추모제”를 봉행하고 있다.
 참고문헌 
  - 「과학기술의 선각인 최무선」(최복규. 최무선선생 추모기념사업회. 2013)
  - 「고려사」 「태조실록」
  - 「무기와 화약」(김기웅, 세종대왕기념사업회, 1977)
  - 「여말선초 화기의 전래와 발달 상·중·하」(허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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