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현록



여산도호부사(礪山都護府使) 최암(崔嵒)
 기본 정보
   本貫 世系 : 영천최씨 22세.  사정공후참판공파
   출생 : 1712년(숙종 38)            사망 : 1782년(정조 6년) 5월 16일
   출생지 : 경북 성주군 수륜면 법산
 정의 
   조선중기 통정대부 행(行)여산도호부사를 지낸 무신(武臣)
 개설
  본관은 영천(永川), 자는 경맹(景孟). 부친은 하동도호부사겸진주진절제사 후태(後
泰), 조부는 통정대부 여산도호부사 호(琥), 증조부는 증(贈)호조참판 진중(鎭中), 고조
부는 증(贈)통정대부 장예원판결사(掌隷院判決事) 은(𨏈)이다. 풍양조씨와 혼인하여 슬
하에 3남 5녀를 두었다. 장남 범성(範星)은 통정대부 (행)삼수도호부사이다.
  1738년 무과 급제하여 통정대부 여산도호부사를 지냈다.
 생애 및 활동사항
  최암은 1712년 성주 법산에서 出生하였다. 어릴 때 자질과 골상이 비범하여 춘천
도호부사겸 강원도병마방어사를 지낸 종조부 가선(嘉善)공이 이마를 어루만지며 장차 
우리 가문을 크게 빛낼 아이라 하였다. 성장하면서 풍채가 엄연하고 독서에 열중하
였을 뿐만아니라 효우(孝友)와 행실이 남달랐다. 
  최암은 과문(科文. 문과 과거시험)에 여러 번 응시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1738년 무과에 급제하여 선전관훈련원주부도총부경력옹양위부호군오위장부산포절
제사박천군수훈련원첨정진주영장 등을 역임하다 통정대부 여산도호부사로 승진되
었다. 고을 수령 재직시 선대의 유훈(遺訓)과 임지에서 모시고 있던 어머니의 뜻을 
받들어 염청공직(廉淸公直) 네 글자를 좌우명으로 삼고, 법령을 근엄하게 집행하고 
윤리를 돈독히 하며 풍속을 교화하니 백성이 화합하고 이웃 고을의 백성들까지 이주
해 오는 이들이 많았다. 
  만년에 사직하고 고향으로 돌아와 봉록의 남은 것을 친척과 벗들에게 나누고, 세
한도(歲寒圖)의 함의(含意)를 담은 송죽당(松竹堂)을 지어 심신을 수양하였다.
 참고문헌 
  - 「法山祖範」(법산 진수재계회. 1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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