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현록



춘천도호부사겸강원도병마방어사 최위(崔瑋)
 기본 정보
   本貫 世系 : 영천최씨 20세.  사정공후방어사공파
   출생 : 1651년(효종 2) 2월 5일          사망 : 1726년(영조 2) 12월 17일
   출생지 : 경북 성주군 수륜면 법산
 정의 
   조선중기 춘천도호부사 겸 강원도병마방어사 등을 역임한 무신(武臣)
 개설
  본관은 영천(永川), 자는 보경(寶卿), 호는 귀락당(歸樂堂). 부친은 증(贈)호조참판 
진태(鎭泰), 생부(生父)는 증(贈)호조참판 진중(鎭中), 조부는 증(贈)통정대부 장예원판
결사(掌隷院判決事) 은(𨏈), 증조부는 증(贈)통훈대부 제용감정(濟用監正) 항경(恒慶), 
고조부는 진사 정(淨)이다. 의성김씨와 혼인하여 슬하에 5남 4녀를 두었다. 방어사공
파 종중을 열었다.
  1670년 무과 급제하여 가선대부 행(行)춘천도호부사 겸 강원도병마방어사 등 관직
을 두루 역임하였다.
 생애 및 활동사항
  최위는 1651년 2월 5일 성주 법산에서 出生하였다. 어려서는 기상이 호탕하고 의
지가 굳세어 또래에서 뛰어났으며 글재주가 남달랐다. 성장해서는 경서(經書)에 뜻이 
돈독하였으나 붓을 던지고 활 쏘고 말 달리는 일로 원대한 포부를 이루기로 결심하
였다.
  숙종 4년 1678년 식년무과에 급제하였다. 복시(覆試)에서 강(講)에 응할 때 무(武)로 
하지 않고 사서(四書)로 하여 의금부도사(義禁府都事)에 승차(陞差)되었고, 임금이 몸
소 주관하는 전시(殿試) 궁술(弓術)에서도 월등하여 특몽(特蒙)되었으니 시관(試官)이 
문무겸전(文武兼全)이라 하였다. 종2품 가선대부로 승진하여 돌아가신 양부(養父)의 
호조참판 증직에 대한 추영사은(追榮謝恩) 시에 처연한 안색으로 엎드려 있어 숙종 
임금께서 그 연유를 물으니 생친(生親)이 미몽(未蒙)이라 하여 그 효성을 가상히 여겨 
생부에게도 호조참판이 증직되었다는 일화가 있다.
  최위는 관직 재임 당시 12개 주(州)와 군(郡)의 도호부사를 역임하였는데 그 치적이 
매우 뛰어났었다. 특히 그가 재직하였던 삼화경흥강계창원부산춘천은 군사적인 
방어 요충지인데, 조정에서 그의 뛰어난 업적을 평가하여 간택하였다고 전해진다. 특
히 경흥부사 재임시는 백두산정계비 수비에 참여하였고, 창원도호부사 재임시는 월
영대를 정비하고 최치원선생 유허비를 수비(豎碑)하였으며, 그의 재망(才望)을 사모하
여 창원에 거사비(去思碑)가 세워졌다. 
  최위는 관직생활 중 공사(公私)가 엄격하고 검소하여 녹봉이 풍족한 부유한 고을에 
재임할 당시에도 주식(酒食)과 향연(饗宴)을 매우 소략히 하였으며 녹봉으로 치부(致
富)하는 소인배들을 멀리하였다. 관직에서 물러나 고향으로 돌아와 법산에 은거하면
서 당호를 귀락당이라 이름하였으며, 대가천 덕은산 아래 반구정 정자를 짓고 자연
과 벗하며 노후를 보내었다.
  최위의 묘는 고령군 운수면 대평리에 있고 묘갈명은 응와(凝窩) 이원조(李源祚)가 
썼다.
 참고문헌 
  - 「法山祖範」(법산 진수재계회. 1996)
  - 묘갈명(응와 이원조 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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