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현록
대사간 천곡(泉谷) 최원도(崔元道)
기본 정보
本貫 世系 : 영천최씨 8세. 정헌공파
출생 : 1325년(고려 충숙왕 12) 사망 : 미상
출생지 : 영천시 나현(羅峴)
정의
고려 후기 공민왕 때 대사간(大司諫)을 지낸 문신
개설
본관은 영천(永川). 자는 백상(伯常) 호는 천곡(泉谷). 부친은 정헌대부 판전의시사
(判典醫寺事) 유진(有珍), 조부는 통훈대부 행(行)경상감사안렴사(慶尙監司按廉使) 안
인(安仁), 증조부는 봉정대부 사온령동정(司醞令同正) 윤(倫), 고조부는 봉익대부 판도
판서(版圖判書) 윤기(允琪)이다. 홍주이씨와 혼인하여 2남을 두었다. 차남 전서판군기
시사(典書判軍器寺事) 일(壹)은 출계(出系)하여 그 후손들이 부사공파사정공파로 갈라
졌다.
최원도는 고려 공민왕 때 대사간을 지냈고 신돈의 힁포로 관직을 사임하고 고향
영천으로 낙향하여 은거하였다. 당시 교분이 두터웠던 광주이씨 둔촌(遁村) 이집(李
集)이 신돈을 비판하다 역모에 몰려 피신해 부친 이당(李唐)을 모시고 찾아온 것을
숨겨주고 이당(李唐)이 죽자 묘지를 제공해 장사를 치러준 일화가 있다.
조선조에서 대사간을 제수하였으나 불사이군의 절의를 지켜 직(職)에 나아가지 않
았다.
생애 및 활동사항
최원도는 고려 후기 1325년 영천 나현(南羅峴)에서 출생하였고 목은(牧隱) 이색(李
穡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1347년 소과, 1354년 대과 급제하여 사헌부 사간원의 대
간(臺諫)을 거쳐 대사간을 지냈다. 당시 요승 신돈(辛旽)이 정사에 관여하면서 부정부
패로 나라가 흔들리자 신돈 탄핵 상소문을 두 번이나 올렸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
다. 신돈의 힁포가 날로 심해지자 사직 상소를 내고 고향 영천 남쪽의 라현으로 낙
향하여 은거하였다.
최원도는 평소 문장으로 이름난 둔촌(遁村) 이집(李集: 1327∼1837)과 교분이 두터
웠다. 1368년(공민왕 17)에 이집은 개성(開城) 용수산(龍首山) 밑에 살고 있었는데, 승
려 신돈(辛旽)의 행패에 대하여 비판한 말이 신돈의 귀에 들어가자 병든 부친 이당
(李唐)을 모시고 피신하여 영천의 최원도에게 갔다. 최원도는 이집과 그의 부친을 집
안에 몰래 숨겨주었다. 그는 가족에게도 이들을 숨겨준 것을 철저히 비밀로 하였으
며, 이듬해인 1369년(공민왕 18)에 이당이 죽자 자신의 장지(葬地)로 예정했던 나현
(蘿峴 : 지금의 영천 북안면 도유동)의 모친 산소 인근에 예를 다하여 장사지냈다. 이
때문에 광주이씨(廣州李氏) 대종회에서는 시제(時祭) 때마다 최원도와 그 모친에게도
제사를 드리는 관습을 갖게 되었다.
후에 고려가 망하자 세상에 나가지 않고 구룡산(九龍山) 밑 천곡동(泉谷洞)에 은거
하였다. 운곡(耘谷) 원천석(元天錫)‧음촌 김약시(金若時)‧석탄(石灘) 이양중(李養中)‧관가
정(觀稼亭) 최청(崔淸)‧복애(伏崖) 범세동(范世東) 등의 동지와 함께 봄가을로 고려 태
조와 공민왕에게 제사를 드렸다. 또 우제(迂齋) 이취(李就), 서파(西坡) 이안유(李安
柔), 태재(泰齋) 류방선(柳方善) 등의 벗들과 더불어 시가(詩歌)를 읊조렸다.
태조 이성계가 대사간(大司諫)의 벼슬을 내려 수차례 불렀으나 응하지 않았다. 고
려에 신의를 지킨 두문동(杜門洞)의 선비들과 견주어질 정도로 칭송되었다.
참고자료
- 담양삼강록
- 둔촌잡영(遁村雜詠)
- 용재총화(慵齋叢話)
- 규장각한국학연구원(http://e-kyujanggak.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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