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파도/세거지
종가(宗家), 총제공파 연원과
파조(派祖) 최용화(崔龍和) 총제공(總制公)
아! 우리 종족(宗族)이 영천(永川)에서 터전을 정하신 것은 연산부원군(燃山府
院君) 휘(諱) 한(漢)으로, 부원군께서는 고려조 의종, 명종 연간에 공(功)이 있어
봉토(封土)를 받은 곳이 연산(燃山)이다.
연산은 지금의 영천이니, 영천으로 관향(貫鄕)을 삼은 것이 이로부터 시작된
다. 부군께서는 명민(明敏)한 재주와 크고 넓은 덕으로 금호강 상류 이수삼산(二
水三山)의 사이에 토대를 닦아 백리의 땅에 큰 업을 여시고 백세의 아래에 은택
을 입게 하니, 후손들이 세상에 들어나고 자손들이 번성하여 문학(文學)과 충훈
(忠勳)과 절의(節義)와 음사(蔭仕)와 수직(壽職)과 대소과(大少科)에 합격한 자가
말할 수 없이 많아 집안의 명성을 떨어뜨리지 않았다(총제공파 파보 서문, 이하
생략).
총제공파(總制公派)의 파조(派祖) 휘(諱) 용화(崔龍和) 총제공은 시조공의 8세
이다. 부(父)는 통훈대부(通訓大夫) 좌우위보승랑(左右衛保勝郞) 행 경주판관(慶
州判官), 경상감사(慶尙監司), 안렴사(按廉使)를 지내고 자헌대부의정부좌참찬(贈
資憲大夫議政府左參贊)으로 추증 받은 휘(諱) 안인(安仁)으로 장남 홍도(弘道),
차남 용화(龍和), 3남 홍범(弘範)의 세 아들이 있다.
총제공(總制公)의 초(初) 휘(諱)는 홍의(弘毅)이고, 자는 대여(大汝)이다. 1364
년(고려 공민왕 13년) 영천에서 태어났다.
성질이 범상(凡常)하지 않았고 칼과 활을 잘 다루었으며, 국량(局量)이 넓었다.
포은(圃隱) 정몽주(鄭夢周)가 중국에 사신을 갈 때 함께 갔다.
이조 때 벼슬이 ‘강화부사’를 거쳐 ‘초토 영전사’를 지내다가 ‘병마절제사’(정3
품 무관직)가 되었다. 태종 8년(1408) 5월에 왜적이 우리 국경에 침입하여 노략
질을 하였으므로 ‘조전 첨절제사’(助戰僉節制使)가 되어서 경기 좌우도의 해변에
파견되어 왜적을 막았다.
그 공으로 그해 11월에 도총부(都摠府 : 조선시대 중앙군인 오위(五衛)를 지휘
감독하는 최고 군령 기관) 가선대부(嘉善大夫) ‘좌군 동지총제’(左軍同知摠制)가
되어 경기 좌우도 ‘수군 도절제사’(京畿左右道水軍都節制使)를 겸하게 되었으며,
이와 같이 휘(諱) 용화(龍和) 총제공께서 도총부 ‘동지총제’ 벼슬에 올라 ‘총제공
파’ 로 분파되고 파조(派祖)가 되었다.(1950년대 파명은 ‘병사공파(兵使公派)’ 였
으나 이후 ‘총제공파’로 변경이 되었음을 파보 발행을 통해 알 수가 있다)
특히, 태종 9년(1409) 1월에 강화와 교동 땅을 군자(軍資)로 삼아 달라고 임금
에게 상소하기를 “강화와 교동은 나라의 출입구가 되므로 해구들이 서울을 정탐
할 때는 이곳을 이용하므로 군함을 정박하여 두는 것은 좋은 계책이나 황해도와
충청도의 바닷가에 왜적이 침입할 때는 즉시 군대를 출동시켜야 하는데 다만 군
량의 창고가 이곳에 없으므로 아주, 연안, 수원, 광주에 가서 군량을 갖고 와야
하기 때문에 적을 추적하는 좋은 기회를 많이 놓쳤습니다. 고려 때에 국난을 만
나 강화도로 피난을 와서 나라를 보전할 수 있었던 것은 군량을 이곳에 많이 준
비하여 두었기 때문이옵니다. 청하옵건대 이 두 읍에서 생산되는 곡식으로서 관
청과 향교에 쓰는 경비를 제외하고 모든 창고에 있는 곡식을 육지로 옮겨 군자
로 부속시켜서 해마다 산성에 쌓아 두었다가 뜻하지 않은 일에 미리 대비 하소
서” 하였더니 임금이 그 계략이 훌륭하다 하고 군자창(軍資倉)을 즉시 시행하였
다. 그 후 1412년(태종 12년) 벼슬이 우군 응양위(右軍 鷹揚衛)와 우일번 절제사
(右一番 節制使)가 되었다
1415년(태종 15)에 병선(兵船)을 잘 수리하지 못하여 공홍주도수군도절제사
(公洪州道水軍都節制使)에서 파직되었다. 그 후 고향으로 돌아와 지내다 1422년
(세종 4년) 7월 15일 세상을 떠나 경주부 북안면 저현(楮峴 : 지금의 영천시 북
안면 송포리) 부제내 양좌(釜堤內 良坐)에 모셔졌으나 무진(戊辰) 2월 17일 같은
지역인 경북 영천시 북안면 송포리에 이장(移葬)하고, 1971년 3월 묘도비(墓道
碑)를 건립하였으며, 배(配) 정부인(貞夫人) 경주(계림) 김씨와 합장(合葬)한 묘
소이다. 총제공은 영천과 경북을 빛낸 인물로도 기록되어 있다.
총제공의 자(子)는 생원통덕랑(生員通德郞)을 지낸 휘(諱) 억년(億年, 시조공 9
세), 손자(孫子)는 충순위(忠順衛) 윤정(潤汀, 시조공 10세)과 훈도(訓導) 윤원(潤
沅)이 있다. 증손자(曾孫子)로 장남 효분(効汾, 시조공 11세)과 차남 효현(孝峴)
이 있다.
총제공의 3세 장남 증통정대부(贈通政大夫) 효분(効汾)은 자(子)로 호(浩, 총제
공의 4세)가 있으며, 5세(시조공 13세)로 응수(應洙), 응사(應四), 응렴(應濂), 응
락(應洛) 4형제가 있다.
①휘(諱) 응사(應四), 주남(柱南), 보( 普), 동망(東望)에서 영천삼산(三山)문중,
②휘(諱) 주남(柱南), 율( 栗), 희망(姬望)에서 영천전사(前沙)문중 ③휘(諱) 주남
(柱南), 율( 栗), 주망(周望)에서 영천월천(月川)문중 ④휘(諱) 응사(應四), 벽남(擘
南), 언(嵃), 광국(光國)에서 영천서운(瑞雲)문중 ⑤휘(諱) 응사(應四), 정남(挺南),
(崐), 운망(雲望)에서 영천애련(愛蓮)문중 등 5개 문중이 ⑥휘(諱) 효분(効汾), 호
(浩), 응렴(應濂), 인걸(仁傑), 후세(厚世), 흥신(興信)에서 자인영동(慈仁永洞)문
중, 그리고 총제공 3세 차남(次男) ⑦휘(諱) 효현(孝峴)에서 영일원동(迎日院洞)
문중이 생겨났으며, 이와 같이 총제공파는 7개 문중으로 이루어져 각각 세계를
이어가고 있다.
후손들 중 나라에 공(功)을 세운 분들이 많이 있으나 대표적으로 총제공의 5
세 휘(諱) 응사(應四), 산룡(山龍), 6세 벽남(擘南), 7세 율( 栗) 등이 있이 있다.
총제공의 동생인 통덕랑(通德郞) 휘(諱) 홍범(弘範)의 자(子) 자헌대부 행 감사
사조판서(資憲大夫 行 監司史曹判書) 휘(諱) 하영(河泳)이 판서공파(判書公派) 파
조(派組)로서 언양천곡문중, 영일건덕문중, 자인곡란문중, 경주오금문중, 경주사
박문중, 자인관상문중으로 나뉘어 세계(世系)를 이어오고 있다.
총제공 묘소와 묘도비(영천시 북안면 송포리)
총제공파 파보
참고문헌 : 태종실록, 영천최씨 대동보, 총제공파 파보, 한국역대인물 종합정보
시스템, 경상북도 홈페이지(경북을 빛낸 인물), 영천시 인물사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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