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파도/세거지



총제공파 자인영동 문중 
   자인영동문중(慈仁永洞門中)은 영천최씨 시조(始祖) 휘(諱) 한(漢)의 
8世인 총제공 휘(諱) 용화(龍和)公이 파조이다. 9世 억년(億年), 10世 
윤정(潤汀), 11世 별시위(別侍衛) 증 통정대부(贈 通政大夫) 諱 효분(効
汾), 12世 별시생원(別試生員) 군위․장기훈도장(軍威․長鬐訓導) 贈 승
정원좌승지․경연참찬(承政院左承旨經叅贊) 諱 호(浩)의 4남 중 3남
인 무과별좌(武科別坐) 응렴(應濂, 13世)公이 자인 영동(지금의 경북 경
산시 진량읍 현내리(영청골)에 세거하면서 문중을 이루어 470여년 이
상 세계를 이어오고 있다.
  진량(珍良)은 조선조 때 자인현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진량면으로, 1997년 11월 진량읍으로 승격하였다.
  자인영동문중은 응렴(應濂) 선조의 세거지인 진량 현내리(영청골)를 
비롯해 영천 금호․대창, 산청 등 각지에서 가계를 이루고 있으며, 
조(鼻祖) 응렴(應濂)公과 광인(光仁)․인걸(仁傑), 후세(厚世)公의 묘가 
실전(失傳)되어 선조를 추모하고자 후손들이 세거지 문중산인 대산(大
山)에 ‘영천최씨3세제단비(永川崔氏3世祭壇碑)’를 건립하였다. 또한 마
을에는 문중 재실인 영산재(永山齎)가 있다.
  문중 내 가계를 보면 수박등 소문중은 시조공의 20世 태구(泰龜. 墓
수박등 병좌) 선조께서 1800년경 아들 성칠(聖七)과 손자 상건(尙建)․
상흥(尙興)․상종(尙宗)․상윤(尙胤)을 데리고 진량면 광석리(감정골 과 
비석골)에 이주하여 집성촌을 이루고 살았다. 그후 일본 강점기 때 22
世 상종(尙宗)의 둘째 아들 23世 치원(致源)께서 아들 상주(相周)와 일
선(馹宣)을 데리고 김해군 김해면 이동리에 세거지를 마련함과 동시에 
상종(尙宗)의 넷째 아들 23世 치근(致根)의 후손인 24世 석주(錫周가 
아들 일선(馹先)과 일산(馹山)을 데리고 만주로 가서 건순(健淳)․만순
(萬淳)․직순(稙淳)․송순(松淳)․임순(林淳)을 출생하여 살았지만 광복 
후 연락이 두절되어 안타까운 마음 그지없다.
  그리고 산청 가계는 일제 강점기 민족의 수난이 시작된 시기에 유행
했던 정감록에 기록된 십승지를 찾아 1919년 3․1운동 이후 경산시 진
량읍 현내리에서 26世 의순(義淳)․달순(達淳)․성순(性淳)․태순(台
淳)․말순(末淳) 형제께서는 가족을 데리고 차례로 지리산 근처 경남 
산청군 삼장면 흥계리와 하동군 적량면 일대에 터를 잡아 가계를 이루
어 자손들이 번창하게 되었다. 
  이와 같이 비조 응렴(應濂)公을 시작으로 자인 영동(련 진량 현내리) 
세거지에서 집성촌을 이루면서 살았으나, 산업화 시대가 되면서 한집 
두집 떠나기 시작하여 대부분 전국 각지의 도시로 떠나가면서 세거지
(世居地)는 물론 이거지(移居地)에도 명맥만 이어가고 있는 실정이다.
  문중의 여러 가계는 매년 추석절 묘소 벌초와 음력 10월에는 진량읍 
현내리 ‘3世제단비’ 에서 조상의 음덕을 기리는 시제를 올리고 있으며,
  자인영동문중은 오늘날 최유신 변호사, 최재원 前 사천시 부시장, 최
무순 전 삼성전자 전무, 최재혁 한국표준과학연구원센터장, 최철한 한
국 프로바둑 9단을 비롯한 많은 인재가 문중을 빛내고 있다. 
       
應濂, 光仁․仁傑, 
厚世公 제단비
永山齎
수박등 문중
비조 泰龜公 묘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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