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파도/세거지
參議公派 密陽世居地의 뿌리
參議公(諱 祥)派의 密陽世居地는 十五世孫 滌(척)의 三男 復(복)에서 分派되어
十六世孫 以前에 慶北 星州 法山 造谷에 世居한 것으로 추정되며, 그 후 十七
世孫때 慶北 淸道 外西面(1912년 慶北 淸道郡 外西面은 慶南 密陽郡 淸道面으로
行政管活 改編) 근기마을로 移住하여 약 240年間 世居했던 것으로 보인다.
지금도 隣近地域에 田畓과 10基가 넘는 墓地를 管理하고 있고, 특별히, 조천리
所古 夜塔谷 山嶝 先塋에 8基는 도래솔로 이루어져 있어 한 때는 家勢가 騰騰했
음을 짐작케 한다. 하지만, 門中 代代로 외동아들로 내려오다 家勢가 기울어 二
十四世孫 柱光(字, 學鳳)은 부득이 出嫁한 姑母가 있는 密陽郡 山內面 臨皐로 族
譜만 갖고 移住 定着하게 되었다고 한다.
門中은 十六世孫부터 二十五世孫까지 무려 300年間 子孫이 貴하여 勢가 弱하였
으나, 世居地 密陽에서 二十四世孫인 柱光(字, 學鳳) 3名 아들에서 孫子 9名두면
서 6.25動亂以後인 二十七世孫과 二十八世孫에 이르러 門中이 크게 繁昌하게 되
었다.
그래서, 宗孫인 二十六世孫 永京(字, 京俊)은 門中의 正體性 確立과 親族間 友愛
를 高揚코자 日帝强占期속에서도 成人以前부터 密陽 山內面에서 從前 世居地인
密陽 淸道面까지 약 50키로미터를 해마다 걸어서 伐草와 時祀 參席, 門中行事 開
催 등 뿌리의 重要性에 대한 산敎育을 實踐해 왔으며, 또한, 門中의 中興을 위해
3兄弟. 2再從과 함께 年에 2回 農閑期마다 星州 法山, 자인골안, 慶州, 蔚山 등 宗
家를 직접 訪問하여 族譜確認, 宗親間 親睦圖謀에 노력해 왔었다.
이후, 急速한 産業化가 됨에 따라, 멀어도 6寸以內 였던 世居地친족들은 대부분
職場, 出嫁 등으로 大都市인 釜山, 서울을 비롯한 전국각지로 흩어져 80世帶 300
여명이 살고 있다. 현재 密陽에는 2家口만 남아 世居地로서의 命脈만 겨우 維持
하고있는 실정이다.
世族이 너무 微弱하다보니 傑出한 人物은 배출되지 못하였으나. 金融界에 많으며,
公職者로는 二十七世孫 崔賢浩 陸軍少領豫編,서울市敎育廳 非常企劃官, 二十七世
孫 崔瀚元 釜山市 江西區 副區廳長, 釜山施設公團 管理․經營本部長, 理事長 權限
代行 등이 있다.
우리 後孫들은 父母世代가 어려운 環境과 與件속에서도 門中의 뿌리를 찾고 이
어가는데 뿌린 熱情과 努力이 헛되지 않도록 이를 繼承發展해 나가는 일에 잠시
도 소홀히 해서는 안 되겠다고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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