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파도/세거지
9代 독자(獨子) 가계(家系)를 지켜온 사직공파
사직공파(司直公派)는 영천최씨 상계(上系) 열 系派의 일곱 번째인 사정
공파(派祖 11世 司正 諱 繼孫)에서 분파(分派)되었다. 사정공께서는 세 분
아드님을 두셨는데, 장자(長子) 휘(諱) 자(滋. 통정대부 벽동부사)公 자손은
법산 문중 등 5개 파로 갈라지고 2자(二子) 휘 하(河)公 자손이 우리 사직공
파, 3자(三子) 휘 환(渙)公 자손은 거창 진사공파이다. 사직공파는 조선 초기
서도(書道)로 이름을 떨친 10世 휘 흥효(興孝)公에 이르기까지 직계 선조님
들이 문장(文章)과 현관(顯官. 높은 벼슬)이 끊이지 않았던 명문(名聞) 문벌
(門閥)이다.
파조(派祖) 사직공(12世. 휘 河)은 관직이 사직(司直. 조선시대 五衛의 정
오품 군직)을 지내셨으며 묘소는 칠곡군 지천면 연화리 광주이씨 종중산에
모셔져 있다. 따님이 광주(廣州)이씨로 출가하셨는데, 연유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公의 산소 관리와 매년 묘사를 광주이씨 매원문중에서 받들고 있다.
광주이씨와 우리 영천최문은 선대 사간공(8世 휘 元道) 선조님과 고려말 문
인 둔촌공(遁村 李集)의 특별한 우정에 관한 일화(逸話)로 인하여 각별한 인
연을 후대까지 간직하고 있다. 14世 휘 옥(沃) 선조님은 진사, 16世 휘 원
(沅) 선조님은 양온령(良醞令. 조선 때 궁중에서 쓰는 모든 술의 수급 관리
를 관장하던 양온서의 정오품 관직), 17世 휘 공려(公閭) 선조님은 통정대
부, 21世 휘 재경(在慶) 선조님은 통정대부 공조참의, 22世 휘 한수(汗守) 선
조님은 가선대부 중추부사, 22세 휘 계필(啓必) 선조님은 가선대부 한성부
판윤, 23世 휘 흥대(興大) 선조님은 절충장군 行 용양위부호군, 25世 휘 준
갑(俊甲) 선조님은 절충장군 부호군, 25世 휘 준용(俊龍) 선조님은 가선대부
중추부사 등으로 당시 신분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벼슬은 끊이지 않았으나
자손이 귀한 편이었다. 파조 사직공 이후 21世까지 독자(獨子)로 가계(家系)
를 이어왔는데, 언익(彦益)15世에서 무후(無後)로 三從姪 휘 원(沅) (참의공
휘 상(祥)14世, 孫子)公이 입계(入系)하여 오늘에 이른다.
사직공파 세거지는 고령군 성산면 어곡 2리 안어실이다. 안어실은 대구
고령 국도가 통과하는 고령군 성산면소재지(어곡 1리) 남쪽 제석산 아래 있
는 마을로 원래 성주군 소야면 지역이었으나 1906년 고령군에 편입되었다.
일제시대까지는 우리 일족이 30여 가구 거주하셨으나, 이후 일부는 중국 일
본으로 이주하시고 국내에서도 서울 부산 등 각지로 이산되어 현재는 10여
가구만 남았을 뿐이다. 우리 선조님께서 언제 이곳에 복거(卜居)하셨는지 정
확한 기록은 없으나 구전(口傳)에 의하면 임진왜란 당시 전란(戰亂)을 피하
여 마을 뒤 제석산좌측 호굴(虎窟)에 우리 가문의 선조님을 비롯 김녕김씨,
김해허씨 등 3성(三姓)이 피난하였는데, 이후 각각 성산면 어곡 2리, 성산면
삼대 2리, 개진면 구곡리 등으로 흩어져 정착하였다는 설이 있다.
우리 문중에서 비교적 현달(顯達)한 현지 및 출향 인사로는 현재 우리 대
종회 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는 웅학(雄學. 29世)대종회장을 비롯해서 봉수(
27世 故人,高靈郡山林組合長) 성수(28世 故人, 세계사격선수권대회 메달리스
트), 성달(28世. 釜山市廳副理仕官), 정일(28世.事業 서울) 득만(29世. KT 任
員), 득호(29世. 法務士) 용규(30世. 軍法務官) 등 다수가 있으나 종인 상호
간 교류가 원활치 못하여 일일이 파악하여 거론하기 어렵다.
웅학 대종회장은 젊은 시절 사업을 시작하여 가문(家門)을 일으키고, 선조님
으로부터 물려받은 타고난 품성(稟性)과 든든한 재력을 바탕으로 국제라이
온스클럽 지역 회장 등 왕성한 사회 봉사활동을 벌여왔다. 2017년 대종회장
에 피선되어 1차 임기를 만료하였으나, 첫 임기 때 추진한 대동보 발행 사
업을 마무리하기 2022년 총회까지 임기연장을 지난 총회에서 확정하였다.
웅학 대종회장은 취임 후 역대 회장님들이 다져온 단단한 기반 위에서 장
기적 안목으로 우리 대종회의 위상 정립과 활성화 방안을 모색하여 열정적
으로 추진해 온 결과 이제 그 가시적 성과가 서서히 나타나고 있다. 2015년
최무선장군기념사업회에서 건립한 영천과학관 내 최무선장군송덕비 부채
문제가 기념사업회 와해로 우리 대종회에 비화(飛火)되어 영천 지역 여론이
극도로 악화돼 있었으나, 웅학 회장님이 발 벗고 나서서 노력한 결과 여러
종인들의 아낌없는 협찬으로 이 문제를 깔끔히 해결하고 헌성비 등 부대사
업까지 마무리하여 지역에서 추락한 우리 대종회 위상을 제고(提高)하였다.
또한 대동보 발간과 인터넷 전자족보 구축 사업을 발의하여 초창기 대다수
종인들의 무관심과 일부 집행부의 반대를 설득으로 극복하고 뚝심으로 밀
어붙인 결과 현재 상계(上系) 열 계파(系派) 50개 세거지 문중 대다수가 참
여하여 금년 년말 발간 완료를 눈앞에 두고 있는데, 아마도 책자 족보 발간
은 이번이 마지막이 되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다. 이 사업을 추진하는 과정
에서 성열(性烈. 법산문중) 사무국장님과 같이 상당 기간 전국 각 지역 문중
과 종인들을 찾아다니며 설득하여 대다수 문중의 참여를 이끌어냈는데,
대종회장과 사무국장 두 분은 대종회 일에 정말 열정적으로 헌신하고 있다
고 떳떳하게 말할 수 있다. 이 밖에도 대종회 종훈(宗訓) 및 문장(文章. 상
징 표지) 채택, 대종회 운영에 각파의 관심과 참여를 이끌어내어 대종회 운
영을 활성화하고 위상을 제고하는 등 대내외적으로 우리 대종회가 상당한
발전을 가져왔다고 말할 수 있다.
우리 사직공파는 다른 파에 비해 인구가 적고, 오래 전 세거지를 떠나 전
국 각지로 흩어져 살다 보니 세거지 연고에 대한 애착심이 다소 희박한 편
이 아닌가 생각된다. 이번 대동보 발간을 계기로 앞으로 문중 종회(宗會)를
더욱 활성화하고 종인 상호간 친목 도모와 교류를 확대하는 방안을 적극
모색하여 조상님들의 숨결 어린 이곳 어곡리가 문중 족친들의 명실상부한
마음의 고향으로 구심점이 될 수 있도록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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