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파도/세거지



 과학기술의 얼을 이어가는
 영성부원군(永城府院君)파 
  영성부원군파는 영천최씨 7세손 최무선 장군(1325~1395)의 후손으로 장군
의 화약무기 개발 과 진포해전 승리 공덕을 인정받아 태종임금에게 사후에 
받은 품계인 永城府院君(영성부원군)파로 불린다.
  최무선 장군은 우리나라 최초로 화약을 만들어 화약무기를 개발한 고려
시대의 장군이며 과학자로 화포, 화통, 화차를 활용하여 진포(군산부근)에 
머물고 있던 왜선 500여척을 침몰 시켰다. 이 공적으로 자문하부사 벼슬에 
올랐다.
  아들 해산(海山)은 대를 이어 무기제조에 힘썼으며 병조참판에 올랐다, 손
자 공손(功孫)은 남원병마절제사(南原兵馬節制使)를 지냈다.
  대를 이은 화약무기의 기술전수는 훗날 임진왜란 해전에서 왜군을 크게 
물리치는데 크게 이바지 했다.
 13세 윤성(允誠)은 전력부위 부장으로 임진왜란 때 의병들과 함께 추풍령 
전투에서 왜군과 싸우다 전사하였다.
  이후 후손들은 왜적들에게 주 표적이 되어 깊은 산골로 숨어들었을 것으
로 추측되며, 옥천군 양산면과 영동군 학산면에 집성촌을 이루며 살아왔다. 
  영성군파 종친들은 충청북도 영동군 학산면 서산리와 양산면 원당리에 
있는 종중산에 모셔진 조상들의 묘에 10월 첫째주 일요일(음력)에 모여 시
제를 지내고 있으며, 추석 전 휴일을 종친만남일로 정하여 선산을 중심으로 
선현들의 산소를 모든 종친들이 함께 돌보며 조상들의 얼을 이어나가는 노
력을 하고 있다.
  화약을 단지 놀이용으로 보지 않고 나라를 지키는 무기로 개발한 최무선 
장군의 기술혁신과 끊임없이 노력하는 과학정신을 기리기 위해 2012년 영
천시에서 최무선 과학관(영천시 금호읍 원기리)을 세웠으며, 해마다 4월 21
일엔 영천시와 영천최씨 문중 공동주최로 최무선추모제와 과학행사가 최무
선 과학관에서 열리고 있다.
  나라에서는 화약발명가인 최무선장군을 기리기 위해 잠수함 ‘최무선
함’을 만들어(해군1993) 현재 운행 중에 있으며 지금까지 우리나라를 지키
는 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잠수함 진수식 때 문중대표로 영성부원군파 직
계후손이 참석하여 함께 테이프를 자른 금도끼를 문중에서 간직해오다 최
무선 과학관에 기증, 전시되고 있다. 
  영성부원군파 후손들 중 사십년 넘게 옷감 짓는 기술을 연마하여 ‘한국
맞춤양복 기술경진대회’에서 대통령상을 받은 ‘원래’(25세)는 부산에서 
‘금창테일러 양복점’을 운영하고 있다. 손끝감각으로 체형을 알아내어 그 
사람에게 딱 맞는 옷을 짓는 맞춤양복 장인정신은 최무선 장군의 손재주와 
기술개발의 얼을 오늘날 그대로 이어가고 있는 좋은 본보기이다.
 
 
  최무선함 진수식에 쓰인 금도끼
최무선함 잠수함(1993)
 
 
기능경진대회 대통령 상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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